군산은 한때 '작은 도쿄'라 불릴 만큼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유산은 단순히 아픈 과거를 상징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그것들이 역사적 가치와 감성을 함께 품은 ‘문화유산’으로 재조명되고 있죠. 군산은 이 유산들을 잘 보존하고 활용해 걷는 것만으로도 근대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살아 있는 박물관과도 같은 여행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1박 2일 일정 속에서 군산의 근대문화유산을 밀도 있게 경험할 수 있는 코스를 안내합니다. 역사와 건축, 골목과 사람, 그리고 시간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여행을 기대해 보세요.
군산 근대건축
군산역 또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나 버스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군산 근대문화유산거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은 군산의 핵심 관광지이자 역사 탐방의 출발점으로, 일제강점기 건축물과 생활 흔적들이 도로를 따라 밀집해 있는 곳입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군산세관 본관은 붉은 벽돌 건물로, 일제 수탈의 상징이자 1908년 완공된 근대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지금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외관만 봐도 그 시대의 건축 정교함과 위세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포토존으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나면 자연스럽게 도보로 이동 가능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으로 향하게 됩니다.
박물관은 원래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이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조선인의 재산을 수탈하고 금융을 통제했던 기관으로 현재는 이를 역설적으로 교육과 기억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내부 전시실에는 조선시대부터 근대 군산의 생활사, 산업, 교통, 건축 등의 테마가 세분화되어 있어 학습적 가치가 높습니다.
이 외에도 인근에는 구 일본제 18 은행 군산지점, 구 군산우체국, 구 미곡창고 등 일본 상업자본의 흔적들이 건물로 남아 있으며, 대부분이 리모델링되어 전시관, 카페, 예술공간 등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낡은 건물’이 아니라, 시간이 쌓인 유산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군산만의 강점입니다.
걷는 내내 안내판과 QR코드로 해설 정보를 볼 수 있으며,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문화해설사가 배치되어 보다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도보로 2시간 정도 여유 있게 둘러보면, 조선과 일본, 근대와 현재가 뒤섞인 군산만의 독특한 정서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
군산의 진짜 매력은 거리의 건물들뿐 아니라, 그 속에 들어서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의 감정'입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히로쓰 가옥입니다. 군산 내 일본인 거주지였던 신흥동에 위치한 이 목조 가옥은 지금까지도 보존 상태가 뛰어나며, 당시 일본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히로쓰 가옥은 내부의 다다미방, 격자창, 미닫이문, 전통 정원 구조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일본인 지주가 살았던 공간을 실제로 체험하는 느낌을 줍니다. 마루에 앉아 있으면 시간도 잠시 멈춘 듯 고요함에 빠지게 되고, 문득 외부를 바라보면 그곳에 앉아 있던 일본인의 그림자가 느껴질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특히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드라마 ‘각시탈’ 등의 촬영지로 쓰이며 많은 여행자들이 찾고 있습니다.
인근의 동국사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불교사찰로, 현재는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지만 전체 건물 구조와 불상 배치, 조경 스타일은 모두 일본 사찰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용히 산책을 하다 보면, 일본인들이 왜 이곳에 사찰을 세웠고 어떤 방식으로 조선인 사회에 개입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신흥동 일본식 가옥 거리에는 당시 일반 서민들이 살던 작은 목조 가옥들이 지금도 일부 남아 있습니다. 일부는 전통찻집, 공방,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며 그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죠. 조용한 골목을 걷다 보면 마치 한 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감각이 느껴지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삶의 흔적들은 여행자의 마음을 조용히 울립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시기를 공간으로, 건축으로 기록하며, 지금 세대에게 ‘기억해야 할 역사’로 다시 전달합니다. 그래서 이 도시의 유산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생각하게 하는 여행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역사 여행
군산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역사적 유산 위에 현재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걸은 다음엔 ‘지금’의 군산도 충분히 경험해야 이 여행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경암철길마을은 과거 화물기차가 실제로 주택가를 가로질러 다녔던 진귀한 공간입니다. 현재는 철도 운행이 중단되어, 그 길을 관광객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이자 포토스팟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철길 양옆으로는 70~80년대 분위기의 집들과 상점이 남아 있고, 일부는 레트로 카페, 사진관, 전시공간으로 탈바꿈되어 있습니다.
철길마을에는 ‘군산의 힙플레이스’라 할 수 있는 감성 카페들도 즐비합니다. ‘하루커피’, ‘레트로팩토리’, ‘공간별’ 등은 모두 옛 창고나 주택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내부 인테리어와 메뉴 하나하나에 군산만의 색이 묻어납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창밖 철길을 바라보며 잠시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머무는 그 순간은, 여행이 주는 감정 중에서도 가장 깊은 순간일 수 있습니다.
빠질 수 없는 명소는 이성당입니다. 1945년부터 자리를 지킨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으로, 팥빵과 야채빵은 하루 수천 개 이상 팔릴 정도로 인기입니다. 이곳에선 빵 하나를 먹는 것조차 군산의 역사를 맛보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성당 주변 거리에는 다양한 로컬 샵과 공예가게, 오래된 책방도 있어 이른 저녁까지 시간을 보내기 좋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공간으로는 은파호수공원을 추천합니다. 일몰 무렵 분수가 켜지고 호수에 반사된 조명이 퍼지는 장면은 조용하고 로맨틱합니다. 가족 여행자에게는 산책코스로, 연인에게는 데이트 장소로, 혼자 여행하는 이들에겐 사색의 공간으로 적합합니다.
군산은 소리치지 않습니다. 그저 오래된 돌담과 벽, 목조 건물, 철길, 호수, 그리고 바람이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말없이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죠.
결론
1박 2일 동안 군산을 여행한다는 건,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시간을 걷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그 위에 감성을 더해 현재를 살아가는 도시. 군산은 그런 도시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마주하며, 앞으로의 삶에 작은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